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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인생 2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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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10-14 16:50 조회9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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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나그네 생활 출2:11-22

 

1. 장성한 모세는 민족 구원을 위해 나섰습니다.(11-12)

애굽의 바로 공주의 양자로 자라난 모세는 장성하였습니다. 7:23에 의하면 그때의 모세 나이는 40세였습니다. 그 나이 정도면 애굽의 왕자로서 제반 국정(國政)에 참여할 위엄과 지략을 충분히 갖추었을 것입니다. ‘한번은모세는 장성한 이후 늘 동족의 고통스러운 노역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터라 이 '한번'의 경우는 평소의 생각을 행동화한 때로 볼 수 있습니다. ‘나가서이는 모세의 외출이 고통당하는 동족의 근황을 살피기 위해서 그 현장으로 나갔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인도하심만을 믿고 본토와 친척을 떠났던 그런 결단을 했던 것입니다. 이는 결코 도피나 실패가 아니라 용기와 동족애는 일찍이 유아기 때 젖을 먹이던 침모 요게벳으로부터 전해들은 여호와 신앙과 히브리 역사에 깊이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되어진 것이 분명합니다. 모세가 현장에 나가서 무엇을 보았습니까? 형제가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혹독한 노역을 보았습니다. ‘보더니라는 말은 '숙고하다', '주목하다'는 뜻으로 모세는 학대받는 동족들의 비운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지 않고, 깊은 관심을 가지고 늘 지켜보아 왔음에 틀림없었습니다. 그가 바라보는 그 관심의 눈은 사실은 불쌍한 동포들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자애로운 눈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어떤 애굽 사람이’ '감독들'(1:11)인 듯합니다. 애굽의 고고학적 자료들에 의하면, 종종 긴 막대기를 팔에 낀 노역 감시관들의 모습이 나오는데 이는 당시의 혹독했던 고역 상황을 생생히 보여줍니다. 그들이 모세의 동포들 형제를 사정없이 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미 동포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한 모세는 무엇이든 행하고자 했습니다. ‘좌우로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라고 했는데 모세는 혈기에 찬 기질과 더불어 침착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또한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만을 의식하여 주위를 살폈을 뿐 공의의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요즘 같으면 주위에 CCTV 감시 카메라가 없는가를 살필 것입니다. 무단으로 쓰레기를 버리는 곳에 CCTV를 설치하니까 더 이상 쓰레기를 버리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누군가 하는 말이 요즈음은 하나님보다도 CCTV를 더 무서워한다는 우스개 소리를 하더군요. 모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때 모세의 시야는 좌우 사람보다 위, 곧 하늘에 머물렀어야 옳았습니다. 마침 사람이 없다고 판단한 그는 애굽 사람을 쳐 죽여모래 속에 감추었습니다. 모세는 전쟁에 많은 경험도 했고 용맹스러웠습니다. 이것은 동족 이스라엘을 향한 사랑이기는 했지만 단지 혈기에 호소할 수밖에 없었던 인간 모세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이는 예수께서 잡힐 당시 혈기에 찬 베드로가 말고의 귀를 칼로 친 사실을 상기시켜줍니다.(18:10).

모래에 감추니라’- 히브리인들의 노역 장소인 고센 땅 동부 지역에는 모래가 많았습니다. 이것이 모세가 동족을 구원하기 위해서 나선 첫걸음이었습니다.

 

2.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였습니다. (13-15)

하루가 지났습니다. ‘이튿날그곳에 또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웁니다. 그 잘못한 사람에게 모세가 나서서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며 말렸습니다. 모세는 왕자의 신분이었으나 싸우는 동포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노예 생활하는 히브리 동족을 가까이 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한편,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 자랐고 의상도 남다르고 하니 동포들이 그를 지도자로 인정해 줄 것이라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모세가 점잖게 타이릅니다. ‘자자 그만하십시다. 동포끼리 왜 싸웁니까? 당신은 왜 잘못도 없는 이 사람을 때립니까? 그만하세요.’라고 권하는 겁니다. 그런데, 예상 외로 모세가 거절당했습니다. (14)“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이르되 일이 탄로되었도다악의에 찬 비난을 합니다. 당신이 우리의 재판관이냐? 누가 당신을 재판관으로 세웠느냐?고 따집니다. 개인적 울분에 사로잡힌 나머지 모세의 애정어린 설득을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살인자라는 약점을 이용하여 모세를 곤경에 빠뜨릴 것 같았습니다.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어제 좌우를 살피며 사람이 없는 줄 알았는데 이 사람이 보았던 겁니다. 모세는 매우 두려워서 그만 기절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두려워하여, 간담이 뚝 떨어질 정도로 '깜짝 놀라다'는 뜻입니다. 자신이 어제 살해한 애굽인을 감쪽같이 숨겨두었다고 생각했는데 모세가 하는 말이 탄로 되었도다이렇듯 하나님의 일이란 단순한 의협심이나 자력적 혈기 등만으로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모세는 이때에 평생 잊지 못할 상처를 입었습니다. 동포로부터 거절당한 아픈 상처를 안고 광야생활을 합니다. 40년 후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애굽으로 다시 보내실 때에도 백성들이 자기를 거절할 것을 우려하지 않았습니까? 하여튼 동족에 대해서 인간적 접근을 시도했던 모세의 처음 방법은 철저히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그는 이 사건 후 수많은 연단 과정을 겪으면서 동족에 대한 구원은 인간적인 방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공의로우신 방법에 의해서라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66:3;4:33). (66:3) 하나님께 아뢰기를 주의 일이 어찌 그리 엄위하신지요 주의 큰 권능으로 말미암아 주의 원수가 주께 복종할 것이며 /(4: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

15절에 보면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는지라

전제 군주 제도하의 애굽에 있어서 왕이나 그 가족은 절대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따라서 비록 양자이긴 하나 애굽의 왕자로서의 신분을 가진 모세가 사람 하나를 죽인 것은 사실 그 자체로는 큰 문제가 아니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의 애굽인 살해 사건이 모세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큰 문제가 되었던 것은 당시 애굽 궁중의 정치 상황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살인 사건 당시 애굽의 바로 왕은 투트모세 3(Thutmose III, B. C. 1504-1448)였는데, 그는 부친 투트모세 2세와 궁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투트모세2세의 왕비인 핫셉슈트(Hatshepsut)는 아들을 낳지 못하자 모세를 양자로 입양 시켰던 것입니다. 이러한 때 투트모세 2세가 일찍 죽자 모세를 입양시킨 투트모세 1세의 무남독녀 핫셉슈트가 애굽의 실권을 장악했고 아울러 모세의 지위도 격상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핫셉슈트에 눌려 섭정기에 있었던 야심에 찬 투트모세 3세는 자신의 확고한 왕권 구축을 위해서 최대의 정적(政敵)이 모세였습니다. 호시탐탐 제거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모세의 애굽인 살해 사건이 들리자 이것을 민족적 감정으로 비화시켜 정치 쟁점화 함으로써 모세를 제거코자 했고, 이에 모세는 자신으로 인해서 동포들이 더 크게 어려움을 당할 수 있을 것에 대한 우려를 했을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도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세는 이런 중에 대립하여 애굽의 권력을 쟁취할 마음을 가질 수도 있었습니다. 어머니 핫셉슈트를 배경으로 해서 그 땅에 머물 노력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선택하였습니다. 히브리서에서 모세의 신앙을 해설합니다. “(11: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11: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3.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인생을 살았습니다. (15-22)

모세가 도피한 곳은 미디안 땅이었습니다. 본래 미디안 사람들은 목축을 위주로 하는 유랑민으로서 여러 곳에 걸쳐 거주지를 이동하면서 사는 족속었습니다. 그러나 일부는 정착 생활을 하기도 했는데 그 주요 정착지는 엘란(Elan) () 동부지역, 곧 아카바 만 지역입니다. 따라서 대체로 미디안 땅이라 함은 아카바 만 지역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모압 경계선 북부(22:4, 7), 혹은 시내 반도 일부에까지 확장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시내 반도 부근에 거주하는 미디안 족속들은 보다 셈족속의 전통과 풍습 및 종교에 영향을 받은 족속입니다. 모세가 미디안 땅 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습니다.

물이 귀한 지역에서 동리는 자연히 우물이나 샘을 중심으로 형성되기 마련이었지요. 어느 날 우물 근처에 앉았습니다. 마침 미디안의 제사장 르우엘에게 일곱 딸이 있었는데 이들이 우물을 길어 구유에 채우고 양 떼에게 먹이려하는데 불량한 목자들이 와서 이 딸들에게 음흉한 수작을 벌이며 훼방을 하였습니다. 사막의 거친 젊은 목동들이 우물가에서 차례를 기다리기는 커녕, 먼저 길어둔 것 마저 빼앗아가려고 했고 더구나 19절에서 그들이 이르되 한 애굽 사람이 우리를 목자들의 손에서 건져내고 우리를 위하여 물을 길어 양 떼에게 먹였나이다하는 말로 미루어보면 목자들은 르우엘 딸들에게 음흉한 수작을 걸어오기까기 했던 것 같습니다. 모세가 누구입니까? 멋있고 용맹스러운 애굽의 장군 출신입니다. 17절에 일어나’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다', '도와주다'는 뜻입니다. 약자의 핍박을 그냥 두고 지나치지 못하는 의로운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애굽 궁중에서 무예를 익힌 그의 용력 또한 대단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나서서 불량한 목자들을 제압하였습니다. 그러니 르우엘의 딸들이 멋진 한 애굽 남성에 의해서 위기를 모면한 이 사실을 아버지에게 알립니다. 미디안 사람들이 볼 때에 모세는 애굽사람이었습니다. ‘한 애굽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애굽 왕실에서 철저한 교육을 받고 성장했으므로 그 용모나 기품에서 전형적인 애굽인의 체취를 풍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모세는 애굽 귀족의 옷을 입고 있었을 것입니다. 르우엘의 딸들은 모세의 각별한 친절을 매우 소상히 보고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르우엘은 당연히 최상의 예우로 그 은혜를 갚고자 했을 것입니다. 아버지 르우엘이 그 사람을 왜 버리고 왔느냐고 질책합니다. 그 말은 자신들의 안전만을 위해 황급히 피신해 옴으로써 은혜 갚기를 가벼이 여긴 딸들에 대한 호된 책망과 아울러 은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강조해 주는 표현입니다. ‘그를 청하여 음식을 대접하라고 했습니다.

귀한 손님에게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대접하는 것은 고대 근동 지역의 오래된 풍습이었습니다. 이렇게 이들의 만남은 서로를 고마워하고 기뻐하는 만남이 되었습니다. 21절을 보면 모세를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애굽에서 황급히 나와서 생활이 안정이 안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구체적인 계획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 집에 머무는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르우엘은 딸을 구해준 믿음직스러운 모세에게 먼저 혼인을 청했으리라 짐작됩니다. 그러자 모세는 자신의 현재 처지를 고려하여 별다른 심사숙고 없이 곧장 그 제안을 승락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모세는 이방 제사장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인 것을 보면 이 사건은 단순히 폐쇄적인 히브리주의에서 개방적이고 포괄적인 여호와 신앙주의로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일찍이 요셉도 애굽 제사장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인 적이 있었지요. 그의 아내 십보라는 ''라는 뜻의 이름입니다. 그녀는 르우엘의 일곱딸 중 맏딸로 추정되며 모세의 첫 아내가 되어 첫 아들 게르솜을 낳았습니다(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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